남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은 이스라엘 왕족들 중에서 뛰어난 자제들을 본국으로 데리고 가서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게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음식을 먹이고, 3년 동안 바벨론식 문화교육을 통해서 바벨론이 키운 인재로 왕 앞에 서게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바벨론은 식민지의 상위층들의 자제들을 바벨론의 인재로 양육해서, 식민지의 백성들이 친바벨론화 시키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의 결단은 단지 좋은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결단은 바벨론 왕국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식민지의 상위층 자제들을 바벨론화 시키고자하는 왕의 정책을 반대하는 행위였습니..
솔로몬의 성전 앞에 두 개의 놋기둥이 섰는데, 각 기둥의 높이는 35규빗으로 16미터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기둥 꼭대기에 머리가 5규빗으로 2미터 정도가 됩니다. 즉, 성전 앞에는 18미터 높이의 두 개의 놋기둥이 세워졌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18미터의 놋기둥이란 아침마다 해가 뜨면 기둥에 반사 된 반짝이는 빛으로 성전의 위치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기둥에는 각각 이름이 붙었습니다. 오른쪽에 선 것은 야긴이고, 왼쪽에 선 것은 보아스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마다 두 기둥을 통해 반사된 빛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그들이 기둥에 비취는 빛을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야긴과..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낮춰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빌 2:5-8)예수 안에 있던 마음은 바로 겸손의 마음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낮아질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냥 낮아지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낮아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순종이며, 십자가의 죽으신 예수 안에 있던 마음입니다. 우리는 힘이 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보니, 힘이 있는 자리에 올라가서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다시 올라가려고..
오늘날 교회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목사도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자 노력합니다. 크고 화려한 건물, 화려한 예배가 그러한 노력들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우선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을에 나타나실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병든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시고, 많은 치유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도,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많이 모아야겠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아프고, 힘이 없고, 위로가 필요한 자들을 찾아가셨고, 굶주린 자들을 만나면 그들을 먹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Missional Church(선교적 교회)는 교회란 특정 장소가 아니라, "I am the church."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은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장소로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냄을 받은 자"들이 됩니다. 전문 신학과정을 마치고 선교사 과정을 이수하고 해외 선교사로 파송된 선교사님들만 복음의 메신저로 살아가는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보냄을 받은 자"들로서 세상 속에서 복음을 움직이는 교회로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특정한 장소(성전)를 "교회"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계신 "교회"로 가서 특별한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만을 신앙생활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
주변의 목회자들을 만나보면, 많은 시간을 말씀 준비와 성도들을 훈련시킬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같다.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문화가 우리 한국사회에는 뿌리내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성도들도 교회에서 성경공부하고, 훈련받는 것을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이 10년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면, 웬만한 신학교육 이상의 교육수준을 유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세계적으로 성도들의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서 성도들의 교육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졌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또 다른 훈련을 받기를 원한다. 훈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은 ..
우리가 익숙한 교회는 중앙집권형이다. 한국교회가 대형화에 성공한 이유는 중앙집권형교회를 성공의 기준으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집권형 교회의 특징은 리더그룹이 교회의 모든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장로교에서 말하는 '당회'라는 조직이다. 당회는 교회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회에서 결정된 것이 그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의 신앙적 기준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당회는 상위 기관인 노회, 총회의 지도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개교회 중심의 한국 개신교는 노회와 총회는 큰 틀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교회의 운영권은 개교회 당회가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중앙집권형 교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리더그룹이 교회 구성원(성도)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한국교..
요즘 "삶이 예배" 또는 "예배가 삶이다."라는 이야기들을 많이합니다. "왜 삶이 예배라고 강조하는 것일까요?"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예배를 이벤트처럼 인식해왔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특별한 장소로 이동해서 세상에서 다루지 못하는 "거룩한 무엇"을 행할 수 있는 특별함이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이벤트처럼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예배가 주일에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식(이벤트)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영향력이 삶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하는 것입니다.오랫동안 우리는 교회를 세상과 다른 거룩함이 있고, 특별함이 있는 곳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거룩함을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발전시켜갑니다. 사회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 인간의 번영을 위해서 많은 사상의 진보가 일어났고, 과학의 발달로 인간은 전통사회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무장한 군대는 전쟁을 일으켰고, 2번의 세계대전으로 인류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문명의 발달로 의식주의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나라들은 어떻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꿈과 소망없이 그저 세상의 시스템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며, 인생의 갈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 술과 마약 등에 의지하면서 세상을 떠나 지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불안함은 어느 때보..
십자가는 로마제국에서 사형수들에게 사용된 형틀이었습니다. 그런 십자가가 오늘날에는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온 인류를 구원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 소망의 상징, 생명의 상징,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형수에게 사용된 잔인한 십자가를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되면서, 목걸이나, 장식품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 앞에 십자가를 걸어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순절을 보내며,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어떤 좋은 느낌을 가진 모양이나, 악세사리의 용도가 아니라,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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