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7 베들레헴 예루살렘 남쪽으로 10km 떨어진 작은 도시인 베들레헴은 다윗왕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에서 눈에 띌만큼 유명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농업과 목축업으로 살아가는 작은 마을에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 그런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처음 자리하신 곳은 말구유였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 머무실 여관이 없어서 동물들의 먹이를 위해서 사용하던 구유에 자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자리는 크고, 화려한 무엇을 바라는 세상의 욕망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
1. 주일성수 주일성수는 안식일의 기원이 되는 창조의 이야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6일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건은 더이상 손 댈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6일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다고 합니다. 먼저, 여기서 쉼의 의미(안식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안식의 의미를 쉼으로만 생각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 이후 안식하셨다는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안식은 6일 동안 열심히 일하셨기 때문에 지치셔서 쉬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지쳐서 쉬신 것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으로 더 이상 손 볼 것이 없기 때문에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창조의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6일동안 일하시고..
1. 주일성수 vs. 안식일 초대교회에서 안식 후 첫 날 떡을 떼켜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게 되면서, 주일성수는 구약의 안식일을 대체하는 기독교 신앙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렇지만, 초대교회 때는 여전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들, 유대주의자들에 의해서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에 바울사도는 로마서 14장에서 날을 중히 여기는 자들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면하며, 중요한 것은 날이 아니라, 우리가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일이라는 날 자체가 특별한 날이어서 주일성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과 감격을 기억하며, 매일매일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살겠다는 고백으로 주일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한..
1. 주일성수는 자발적인 신앙전통 입니다. 주일성수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주님과의 감격적인 만남 가운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주님을 기억하며, 함께 모여 기도하고, 떡을 떼며, 예배모임으로 발전시켜 가게 됩니다. 주일성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자발적인 신앙전통이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주일성수를 해야된다는 그런 신앙과는 차이점을 가집니다. 주일성수는 결코 규범화키시면 안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 그 자체를 기억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함께 모여서, 주님을 예배하며 신앙공동체를 세워간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주일성수의 신앙의 출바점이 되어야 합니다. 2. 주일성수의 시작 안식후 ..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자라는 표현은 바울사도가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그 의미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무화과 나무 잎으로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으로 가리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옷을 입는가는 그 사람의 성별, 지위, 인종, 사회적 계층을 나타냅니다. 옷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인의 경우 제복을 통해서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리스도의 정체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드라빔은 수호신이라는 뜻으로 족장들의 권위와 재산 상속을 보증해주는 증표로 사용되었습니다. 라헬이 자기가 타고 가는 말 안장에 숨긴 것으로 볼 때, 라반의 집에 있었던 드라빔은 크기가 작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창 31:34)그런데, 야곱이 식구들과 라반의 집에서 도망갈 때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가지고 나옵니다. (창 31:19) 그리고, 라반은 도망간 야곱을 찾아가서 잃어버린 드라빔을 찾는데 열심을 냅니다. 아마도 드라빔은 단순히 족장의 권위를 표시해주는 물건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라반에게 드라빔은 자신의 집을 지켜주고, 그 가정에 번영을 가져다주는 가족 수호신, 바로 우상이었습니다. 라반을 보면, 그는 다신론자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라반의 신앙은 초점이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
1.단어 뜻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 서로 합하여지거나 연결되는 것 2.성경에서 말하는 연합은? 1)부부의 연합창세기 2:24 에서 남녀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부부됨의 연합이 있다. 2)하나님과의 연합열왕기하 18:6 에서는 히스기야 왕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과 연합하였다. 3)그리스도와의 연합로마서 6:5 에서는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에 참여함으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한다. 생명력이 있으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4)공동체의 연합로마서 8:28 에서는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공동체의 연합이 있다. 3.생각하기 성경에서 말하는 연합은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함께 자라나는 것을 말합니다. 연합은 강자에게 약자가 굴복하거나, ..
가라지 비유에서 우리는 천국의 아들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주변에 마귀는 악한 세력들(가라지)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라지 비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인내하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라지 비유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나는 알곡이고, 나를 어렵게하고, 힘들게 하는 주변을 가라지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알곡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은 가라지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냅니다. 그런데, 가라지 비유를 묵상할수록 "과연 나는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 앞에서 알곡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인간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예를들어서 내가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에 다닌다면, 그러한 타이틀에서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들이 성공적이라면, '나는 성공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공을 향해서 달려가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하는 일이 잘 진행되지 않고, 역경과 고난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쉽게 슬퍼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바로 외적인 요인들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외부의 평가에 민감합니다. 그 또한 '나'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양가감정은 변화하고 싶은 마음과 변화하지 않고 싶은 두 마음이 양립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두 마음이 우리 내면에서 갈등의 순간을 만들어 낼 때 느끼는 양가감정은 흔히 변화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가감정은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다. 다이어트나, 담배를 끊거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함으로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변화의 마음이다. 반면 이런 시도들을 과거에 많이 했었지만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현상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한다는 것은 변화의 언어지만, 쉽게 먹는 걸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은 현상유지의 언어다.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출발하기 위한 결단이나, 변화를 위해서 우리 안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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