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리차드 보쿰은 요한계시록에서만 다섯 번에 걸쳐서 선포된 하나님의 자기 선포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는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실 때 선포했던 "I am who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의 신약적 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에 의해서 재선포된 하나님에 대한 선포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 칭호들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계시고, 과거에도 계셨고, 미래에도 계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사도요한의 신학의 재미난 특징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도 계시고, 과거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은 과거를 현재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위해서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에 대해서 선포하신 것들을 연구해 보는 것인데요. 오늘은 그 중에 "알파와 오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 칭호 "알파와 오메가"는 이사야서에서 이미 두 번에 걸쳐서 언급된 것입니다.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신학자 리차드 보쿰은 이사야서의 이러한 칭호는 인간이 만든 바벨론의 우상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만물 위에 유일하신 신으로서의 이해를 전달한다고 말합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선포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
나심 탈레브(Nassim Taleb)의 '이야기 짓기 오류'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들면, 19세기 의사들은 산욕열(분만으로 생긴 생식기의 상처에 균이 침입하여 생기는 병)로 사망하는 산모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 당시 의사들은 그런 노력을 통해서 자신들이 사랑을 잘 베푸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산부인과 병동으로 달려갈 때, 의사들은 시체를 부검한 손을 제대로 소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해도 세균이 가득한 손이 산모에게 병을 옮기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산모의 사망률은 6명 중 1명 이었고, 의사들은 산모의 사망률을 내릴 방도를 찾고 있었지만, 정작 그 원인이 자신..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매일 미디어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현재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비탄에 빠져 가슴을 쥐어뜯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전쟁의 소문과 기근과 박해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 승리와 위엄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서로를 위로할 것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밤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아침에 동이 터오는 것을 바라볼 때에도 어쩌면 오늘 주님이 다시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날이 언제이든지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우리도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종교개혁의 핵심 구호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믿음에 대해서 이론적 접근이 실천적 접근보다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보다 믿음을 가지도록 권유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믿음은 가지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독교에서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과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수 많은 지식적 논의들과 신학적 개념들을 알고 있다고해도,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만남이 없다면, 믿음으로 산다고 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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