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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0-45
오늘 말씀의 장소는 정확한 지명이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초기 사역이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과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왔다는 구절을 짐작해 볼 때, 예수님께서는 이동 중에 나병환자를 만나게 되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역은 예루살렘이 있는 남쪽과 비교해 볼 때 변두리 지역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많았고, 나병환자 처럼 사회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밀려나서 살게 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나병은 율법에 부정한 병으로 이 병에 걸리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날 뿐만 아니라, 가던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를 부정하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피해야 했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렸다는 것은 유대문화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는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온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즉시로 그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나병환자에게서 배우는 기도의 원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감에 있어서 적극적인 믿음의 표현입니다. 에스더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적극적인 마음으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에스더가 성경에 기도했다는 문구가 없는 것을 문제 삼는 분들도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어진 삶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에스더가 민족의 구원을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5-16)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신 말씀입니다. 부유한 지역에 살던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미지근한 신앙으로 영적인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책망 받았습니다. 기도는 적극적인 믿음의 표현입니다.
나병환자에게서 배우는 두 번째 기도의 원리는 "원하시면"의 기도입니다.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던 나병환자는 자신의 병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의 주관자 되신 주님 앞에서 "주께서 원하시면"이라고 말하며 간구합니다. 그렇게도 적극적인 그였지만, 그는 기도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할지라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감사하게도 주님께서는 나병환자가 원하는 그 기도에 자신도 원한다고 말씀해주시면서 응답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기도를 주님도 원하실까 생각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바에 대한 탐구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기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함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께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린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것을 입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나병환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의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치유받은 사실에 도취되어서 정작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수선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도취되어 살아가지 않도록, 바른 길을 안내할 수 있도록 수고와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회복이 있는 자리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회복이 있는 자리는 기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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