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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리 

엘라왕 다음에 북이스라엘의 왕권을 놓고 싸웠던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는 한 번에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시므리입니다.

엘라왕(북이스라엘 네번째 왕)때,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깁돈에서 대치 중이었습니다. 그 때 군대장관이 오므리였습니다. 그런데, 궁에 엘라와 함께 있던 신하 시므리가 엘라왕을 죽이고, 왕이 됩니다. 쿠데타로 시므리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오므리는 시므리가 왕이 된 것에 불만을 가지고 군대를 철수해서 디르사(북이스라엘 수도)로 돌아와서 시므리를 포위합니다. 그 때, 시므리는 궁에 불을 지르고 궁에서 죽게 됩니다. 

시므리 정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지 7일만에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 시므리에 대한 성경의 평가입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왕상 16:19) 

7일 동안 왕위에 있었던 시므리는 고작 통치기간이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하고,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시간의 길이보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졌느냐를 중요하게 여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시므리의 통치기간이 7일이 아닌 10년이었다고 해도 그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게한 평가를 받았을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중요하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디브니, 오므리 

그렇게 시므리가 죽고, 오므리가 왕이 되려고 하자, 다른 한 쪽에서는 엘라의 또 다른 신하 디브니를 중심으로한 세력이 결집되었습니다. 아마도 시므리, 오므리, 디브니는 엘라 왕 때 실세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시므리는 정권을 잡은지 7일만에 죽고 북이스라엘은 4년간 디브니 세력과 오므리 세력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디브니가 죽고 난 다음에 오므리는 북이스라엘 왕이 됩니다. 


오므리의 행적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오므리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쿠데타로 정권이 자주 바뀌면서, 세워진 왕조들마다 2대를 버티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북이스라엘 말기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왕이 당대에 또 다시 쿠데타를 당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다윗왕조 하나로 계속 이어져 내려온 남유다와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나마 잠시 분열된 북이스라엘을 다시 통합하는 왕이 된 오므리는 부강한 북이스라엘의 기초를 다지면서 4대에 걸쳐 왕조가 유지됩니다. 성경에서 엘리야와 함께 나오는 그 유명한 아합왕이 바로 오므리 왕조입니다.

오므리 왕조 때, 이스라엘은 번영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역사적 자료에 보면, 모압의 비문에 오므리가 모압을 정벌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 앗수르의 자료에는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오므리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번영의 기초를 닦고,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하였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 역사의 기록과 평가입니다. 다음은 오므리에 대한 성경의 평가입니다.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왕상 16:25-26) 

성경은 오므리가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였고, 하나님을 노하게 한 왕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오므리의 행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먼저 성경에 기록된 오므리의 행적은 시므리와 디브니를 이기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 하나와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는 과정을 보면, 오므리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서 성을 건축하고 그 성의 이름을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부동산을 매입했으면 매입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성의 이름을 짓는데, 오므리는 판매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지은 것입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성의 이름만 듣고서는 세멜이 그 성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땅 매매 가격도 지나치게 헐값입니다. 작은 언덕도 아니고 수도를 건설할 만한 규모의 산을 고작 은 두 달란트(한 달란트는 34kg)에 거래했습니다. 당시의 시세를 알 수 없지만, 은 두 달란트는 한 나라의 수도를 구입할 만큼 적정한 금액은 아닙니다. 즉, 오므리는 왕의 지위를 이용해서 세멜의 땅을 강제로 빼앗은 것(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토지는 거래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 두 달란트로 땅을 빼앗고, 그 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함으로 토지를 매매한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므리를 가리켜서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을 행한자이며, 여로보암의 모든 길을 행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므리 다음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이 아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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