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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ct vs. Covenant
Contract과 Covenant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Contract은 10의 가치를 받으려면, 10의 가치를 창출해서 전달해주는 방식의 계약관계입니다. 한쪽에서 무엇을 하면, 다른 한 쪽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는 관계입니다. (give and take)
그런면, 벧엘에서 하나님과 야곱이 맺은 관계는 무엇일까요?
Contract이 아니라, Covenant입니다. (Covenant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Covenant)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창출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Covenant 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신 사건이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변함 없는 약속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가 깨달은 것이 바로 언약관계(Covenant)였습니다.
야곱은 계약(Contract)관계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팥죽을 형에게 주면, 형은 나에게 무엇을 주겠습니까?"
벧엘 사건 이전에 야곱이 다른 이들과 관계를 해오던 방식입니다.
그런데,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어떤 조건도 없이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고, 야곱을 다시 이 곳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만의 관계방식을 경험하였습니다.
생각하기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지 않으시다가, 벧엘에서 갑자기 나타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야곱과 함께하셨습니다. 문제는 야곱이 벧엘에 도달해서야 (인생의 쓴맛을 보고나서야),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우리는 내가 원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실거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합니다.
내가 원하는 곳이란 내가 바라는 성공이 성취되는 순간, 내가 올라가고 싶은 저 높은 곳, 나의 욕망이 채워지는 바로 그 순간들일 수 있으며, 그렇게 우리는 내 욕망의 언덕, 그 넘어에서 하나님을 발견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야곱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면, 자신은 형보다 갑절의 재산을 가지게 되고, 형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바로 거기에 하나님이 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자의 축복을 받고나니까, 야곱의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에서의 분노와 살해의 위협 속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챙길 여유도 없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을 떠난 첫 날 밤에 야곱은 자신과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야곱과 함께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야곱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자신이 베고 잔 돌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라반과 맺은 관계
이후 야곱은 라반의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한 달 동안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라반의 양들도 성실하게 돌봐주었습니다. 라헬을 처음 만났을 때, 혼자 돌을 옮기면서, 처음 보는 양떼들에게 물을 먹여주는 야곱의 모습은 라반에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에게 자신과 고용계약을 맺자고 합니다.
라반에게는 딸이 둘(레아와 라헬)이 있었습니다. 그러넫, 야곱은 라헬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에게 7년간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라헬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7년 후에 라반은 그 지방에서는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풍습이 없다며, 야곱에게 라헬의 언니 레아를 먼저 시집 보냅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과 7년을 재계약을 다시하고, 14년만에 라헬과 결혼하게 됩니다.
야곱의 14년
야곱이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라반과 계약한 14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메세지를 주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야곱에게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일했던 7년이 7일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7년 이란 시간을 다 채우고,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야곱의 요청대로 라반은 결혼식을 허락하고, 야곱은 자신의 신부와 첫 날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야곱이 깜짝 놀랍니다. 자신과 결혼한 여인이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요?
결혼식 동안 신랑이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이 없었을 수 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제대로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사기를 당했을까요? 라반과 온 가족들 입니다. 라반에게 따져보지만, 라반은 야곱에게 재계약을 요청합니다. 야곱은 부당한 처우에도 재계약을 맺습니다.
어느 누구도 야곱에게 이 사기사건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도, 야곱이 부당한 처우에 라반을 대응하지 못하는 것에서도 우리는 야곱이 그 집안에서 힘이 없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라반은 고용주, 야곱은 피고용인 입니다. 7년간 라반은 야곱 때문에 재산이 불어나는 것에 신이 났고, 7년간 야곱과 재계약을 하기 위해서 이 사기극을 기획하였습니다. 바로 라반은 오늘날 사악한 악덕 고용주 입니다. 또, 자신의 딸들을 시집 보냄에 있어서도, 자신의 경제적 이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반은 모든 관계를 계약(Contract)관계로 맺고 있습니다. 바로 라반의 집은 세상의 방식대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야곱의 14년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에게서 배운 관계방식이 아닌,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의 방식(계약관계)만을 통해서 살아갔던 시간입니다.
야곱의 연약함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는 야곱의 14년은 야곱의 연약함입니다. 물론 야곱이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은 좋은 변화입니다. 라헬과 사랑에 빠진 것도 야곱의 순전함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방식을 잠시 망각하고,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라반이 제시한 계약관계를 통해서 라헬과 결혼하고자 했는데, 바로 야곱의 연약함 입니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언약관계를 기억하면서 세상 속에서도 언약관계에 기초한 사랑의 관계를 실천 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기다렸다면, 라헬과의 결혼도 14년까지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사랑에 빠진 나머지 감정적으로 라반과의 거래(계약관계)를 받아들입니다. 판단착오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감정에 깊이 빠져 있다보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판단착오를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판단착오를 일으킬 때 우리가 취하는 방식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입니다. 라반이 제시한 거래방식은 야곱에게 익숙한 방법이었습니다. 깊은 감정에 빠져서 이성을 잃고,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대개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일처리를 진행하게 됩니다.
영성이란 매일매일 말씀에 비추어서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야곱이 그 사랑의 감정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잠시 놓친 것이 잘 못된 판단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라반에게 사기를 당하고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라헬과 결혼함에 있어서도 14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향해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합니다.
예배의 부재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깨닫게 되지만, 삶 속에서 나타나는 야곱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야곱은 라반을 통해서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야곱의 옛사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야 할 자신이 아니라, 옛사람을 반복적으로 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야곱의 연약함입니다.
야곱은 라반과 맺은 세상의 거래방식을 기반으로 살아가지 않았어야 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반으로 살아갔어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를 기반으로 살아갔다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기도 당하지 않게 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라헬도 아내로 허락해 주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아쉬운 점은 하란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이야기는 없고, 사랑을 위해서 헌신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을 예배함이 우선되어야, 우리의 사랑도 온전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함에 소흘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장자권을 취했던 것처럼, 아내도 내 힘으로 얻겠다는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벧엘의 사건을 잠시 보류시켜버렸습니다. 물론 이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지만, 야곱은 14년을 소비하고 말았습니다. 예배의 부재는 야곱이 사랑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판단착오를 일으키는 거래방식을 취하게 합니다. 여전히 팥죽 한그릇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얻어내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야곱의 14년은 라반처럼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야곱이 자신보다 거래를 잘하고, 남을 잘 속이는 라반을 통해서 자기자신의 옛사람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영적인 삶의 모습을 새롭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나,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나, 그런 나를 통해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시금 주님 안에서 나를 발견해가는 시간이기에 오늘도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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