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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연구

야곱의 장자권 (야곱 1)

tmc pastor 2018. 9. 25. 14:05


우리 안에 있는 에서와 야곱 

에서는 자신이 가진 장자의 권리를 가벼이 여겼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장자의 권리를 가지고 싶은 욕망가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안에는 에서와 야곱, 이 두 사람의 모습이 모두 있습니다. 에서의 연약함은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장자의 권리를 가벼이 여겼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거저 받은 거들을 가벼이 여기는 에서의 모습이 있습니다. 또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은 야곱의 욕망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야곱의 장자권은 정당한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받은 야곱의 장자권은 정당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에서 큰 아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던 장자의 명분이라고해도 당사자가 그것을 가벼이 여긴다면, 장자로서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장자의 명분을 중요하게 여긴 세상에서는 태어난 순서가 주는 권력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태어난 순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도록 우리를 권면합니다.

반면 야곱은 거래를 통해서 장자의 권리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는 과정 모두가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는 형으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받게 되고 빈 손으로 집을 떠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장자가 받아야 할 혜택이 그에게 돌아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을 통해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하고 있는데, 여기서 성경이 강조하는 야곱의 장자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속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야곱의 장자권은 영적인 의미로 효력이 발생하며,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야곱과 같은 동생들도 차별없이 편입될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똑똑하고, 전략을 잘 세워서 장자권의 효력이 야곱에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거저 받은 것도 하나님의 선택인 것처럼 야곱 또한 하나님의 선택으로 장자의 권리를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벧엘사건

자신과 아버지를 속였다는 소식에 에서는 분노하고,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이삭은 야곱에게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갈 것을 권유합니다. 마냥 편하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막에서 큰 걱정 없이 지냈었는데,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는 야곱의 새로운 여정은 야곱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집을 떠난 첫 날 밤에 야곱은 극심한 고독과 외로움 가운데 잠을 듭니다. 그리고, 꿈에서 사닥다리 꿈을 꾸게 되는데, 하늘과 땅 사이의 통로로 보이는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오고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창 28:13)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축복의 말씀과 함께, 야곱의 여정 가운데 함께하여 주실 것과 야곱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다음 날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을 통해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야곱이 동생임에도 장자의 권리를 받게 되는 사건은 야곱의 특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의롭다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은혜는 흘러갈 수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벧엘 사건 이전의 야곱

하나님을 만난 벧엘 사건 이전과 이후로 야곱의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의 야곱은 사람을 잘 속이고, 잔머리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또한 형에게 팥죽을 주는 대신에 무엇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서 야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거래관계로 생각하고 실속을 챙기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벧엘 사건 이후의 야곱

그런 야곱이 벧엘에서의 사건 이후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벧엘에서의 사건이 칭의의 사건이라면, 이후의 사건은 성화의 사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9장에 보면, 라반의 집을 찾아 가는 중에 우물가에서 목자들을 만납니다. 그 우물에는 우물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 덮어놓은 큰 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찍 도착한 목자들이 돌을 옮기고, 양들에게 물을 주지 않고, 우물 옆에 가만히 앉아서 양들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목자들에게 야곱은 "해가 아직 높은 즉 가축 모이 때가 아니니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목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야곱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야곱의 생각은 먼저 도착한 목자들이 먼저 돌을 옮기고, 양들에게 물을 주고, 풀을 먹게 하면, 자기 양떼도 더 잘 돌볼 수 있고, 늦게 온 목자들도 부지런히 움직인 목자들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지역의 목자들은 더운데, 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수고하고 싶지도 않고, 그로 인해서 다른 이들이 이익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잠시 후 자신의 삼촌 라반의 딸 라헬이 양떼와 함께 우물가에 도착합니다. 그 때 야곱은 혼자서 돌을 옮기고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매우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야곱의 모습입니다. 이전에 거래적 관계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섬기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곱의 장자권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만, 실제적으로 야곱은 급하게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의 재산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이삭의 재산은 모두 에서에게 주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장자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삭-야곱........ 다윗 .........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에서 아브라함으로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 계보입니다. 

야곱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야곱의 특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야곱에게 임한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 됨에 있어서 우리의 무엇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에게 임한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변화된 야곱의 모습은 오늘날 예수의 십자가와 성령의 임재로 구원받은 우리가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향해서 나아야가 하는 변화된 삶(성화)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벧엘 이후 야곱은 실수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게 되는데, 바로 그런 야곱의 삶이 구원받은 우리의 삶과 같습니다. 

야곱의 장자권은 능력에 있어서나, 도덕적으로 야곱이 에서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위대함은 자신의 연약함을 은혜로 덮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꾸준히 하나님 쪽으로 그가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우리가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선교적 삶은 우리의 능력도, 도덕적 우월함도 아닌 우리의 연약함을 덮으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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