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매일 미디어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현재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비탄에 빠져 가슴을 쥐어뜯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전쟁의 소문과 기근과 박해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 승리와 위엄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서로를 위로할 것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밤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아침에 동이 터오는 것을 바라볼 때에도 어쩌면 오늘 주님이 다시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날이 언제이든지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우리도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Day 6 Luke 23: 26-56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26-31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가다가, 마침 시골에서 올라오던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의 뒤를 따르게 했다. 큰 무리가 뒤를 따랐고, 여자들도 함께 따라가면서 슬피 울었다. 예수께서 여자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마라.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는 복되다!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태는 복되다! 젖을 먹인 적 없는 가슴은 복되다!’ 그때에 사람들이 산에다 대고 ‘우리 위로 무너져 내려라!’하고, 언덕에다 대고 ‘우리를 덮어 버려라!’하고 외칠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 있는 푸른 나무에도 그렇게 하는데, 말라버린 나무에는 어..
십자가는 고대에 사형수들을 매달았던 십자틀로, 예수님의 처형 시에 사용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십자가 처형은 후에 로마에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고, 로마의 경우 반란죄와 노예와 피정복민들을 중심으로 십자가 처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정해진 죄수는 처형되기 전, 채찍질을 당하고, 이 후에 자신의 십자가를 직접 지고 형장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가장 지혜로운 것으로 바꾸셨습니다.(고전1:17-18)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기독교 신앙의 상징적 표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이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산 자(생명을 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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