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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여리고

tmc pastor 2020. 4. 8. 11:44

누가복음 19:1-10 

여리고는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과 언약궤를 선두로 6일 동안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나서, 양각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함성을 외치자, 무너진 성벽 사이로 나아가 정복한 성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정복전쟁과 달리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전쟁방식으로 승리를 거둔 전쟁으로 기록됩니다. 

이 후 이스라엘은 모든 전쟁에서 하나님의 전쟁 방식에 따라 제사를 드리고,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인지 아닌지를 묻고나서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이 시작되었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전쟁방법으로 하나님이 무너뜨린 성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 성을 다시 쌓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수6:26), 아합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이 성을 다시 쌓다가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왕상16:34) 

오늘 말씀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여리고를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를 만나면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초기 사역이 이스라엘의 주변부인 북쪽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이스라엘 중심부인 남쪽 예루살렘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여리고는 예수님 사역의 후반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의 명성이 이스라엘에 퍼져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키가 작은 세리장이 삭개오도 예수님을 보러 길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자 돌무화가나무(뽕나무)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내려오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  삭개오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눅19:6) 

예수님 당시 로마정부는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는데, 삭개오와 같은 세리장이들은 로마정부를 위해서 일하면서 부유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일반백성에게 세리장이는 민족을 배반한 그런 부류였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특종이 될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삭개오 이야기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삭개오 개인을 집중해서 보면, 삭개오를 소개하는 단어들이 '키가 작고, 부자이며, 세리장이'라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키가 작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삭개오가 얼마나 출세를 지향하면서 열심히 노력해서 세리장이가 되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나무 위로 올라가는 그의 모습에서 삭개오는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외롭게 살아가는 자신과 달리 수 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자, 삭개오의 마음이 무너지고 맙니다. 평생을 세리장이, 죄인, 나쁜 놈으로만 불리면서 살았던 그에게 예수님의 부르심은 충격이었던 같습니다. 그는 바로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고, 삭개오는 자신이 가진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며, 다른 사람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갚절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은 인격과 삶의 변화를 동반됩니다. 삶의 목적이 바뀐다는 것은 그 분의 일하심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삶으로의 변화이며, 우리는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예수가 삶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뭇 사람은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머무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눅19:7)라고 말하며 문제를 삼습니다. 뭇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하나님의 구원에 조건을 강조하는 신앙인들입니다. 어떠한 조건으로도 구원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가 전제 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조건을 강조하는 경우를 보면, 자신이 누군가보다 더 우월해보이기를 바랄 때인데, 조건을 강조하는 신앙생활은 자신도 다른 이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뭇사람에게서 나타난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건없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해주시는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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