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는 "지금 나의 삶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신앙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일해서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언하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 끝이 아닙니다. 나머지 십분의 구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그 조차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며, 살겠다는 고백이 십일조 신앙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십일조를 해야하느냐, 하지 않아도 되느냐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1.십일조는 의무적 조항이다.
실제로 구약 성경에 십일조가 언급된 구절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십일조를 해야한다고 말할 때, 구약의 말씀들이 인용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해야할 것들을 정말 많이 기록하고 있는데, 왜 그 많은 것들 중에서 현대 교회는 십일조만 끄집어 내서 강조하고 있는 것 일까요?
2.십일조 안하면 암걸린다.
정신나간 소리입니다.
3.십일조의 기능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온 지파의 십일조는 종교적인 일을 전담함으로 생계수단이 없었던 레위인들을 위한 몫이 되었습니다. 십일조는 나눔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도 종교적 일을 전담하는 목사들을 위한 몫으로 십일조을 요청할 수 있을까요?
4.교회는 십일조 신앙을 강조하는가? 십일조를 강조하는가?
개인적으로 현대교회는 건물과 시스템 유지를 위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비전이 되면서, 교회 운영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 교회들이 '십일조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가? 십일조를 강조하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5.종교적 의무를 강조할 때 빠지는 함정
종교적 의무를 강조하는 경우에 의무를 다 하고나면 마음이 편합니다. 종교는 단순합니다. 로봇처럼 주어진 임무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을 다하고나면 나는 좋은 신앙인이 된 것 같고, 마음도 편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의무를 기다립니다. 또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의무를 안하면 불안하고, 의무에 익숙해지면, 그것만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것이 함정입니다.
6.자발적 신앙이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된 우리는 자발적으로(우리의 의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를 비롯해서 인류는 이 일에 실패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것이 복음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은 내가 자발적으로 그 은혜에 반응하게 될 때, 그 힘은 십분의 일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전통교회에서 자라서 목회자가 된 제가 이해하고 배운 십일조 신앙은 너무나도 좋은 것입니다. 교회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일조 신앙이고,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표현이 될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합니다.
7.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현대 교회는 건물과 조직으로 교회의 형태를 바라봤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자금도 더 많이 필요합니다. 교회와 기업의 시스템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끝없이 성장이 강조되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란 성도 한 명 한 명이 지체로 연결되어서 몸을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우리 교회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에 대한 끈임없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8.공동체로서 운영되는 교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 참여와 헌신을 기반으로 교회 공동체는 세워져 갑니다. 교회를 공동체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고, 각기 받은 은혜를 나누게 됩니다. 지체마다 받은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에 각기 자기 은사대로 공동체의 필요들을 채워갑니다. 자기를 주장하기보다 주님 안에서 함께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서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공동체를 교회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교회는 각기 다른 형태로 세워져 가게 됩니다.
9.기독교 신앙 = 삶
기독교 신앙은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구약의 십분의 일이 신약에서는 십자가 정신(십분의 십)으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일조 신앙이나, 십자가 신앙이나 같은 이야기입니다. 둘다 지금 나의 삶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인데, 종교적 의무인 십분의 일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십일조 신앙(십자가 신앙)을 강조해야 합니다.
십일조 신앙(십자가 신앙)은 내 삶이 하나님의 것으로 표현되는 신앙을 말합니다. 종교적 의무로 신앙생활을 하면,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의무적 행위를 마침과 동시에 나는 바른 신앙인이 되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신앙은 나의 삶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의 신앙행위 뿐만 아니라, 나의 삶에서도 신앙적 활동이 이어집니다. 즉, 물질 헌신만이 아니라, 나의 말 한 마디,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하는 일, 나의 일상을 신앙인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0.교회 안에서 십분의 일, 교회 밖에서 십분의 구?
이런 구분도 불필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삶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은, 이웃을 향한 말 한 마디, 일상에서 나의 모습으로 초점이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모습을 질책하셨습니다.
11.미래 교회
목회자가 모두 풀타임이어야 한다는 조항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목회자는 레위인이 아닙니다. 또, 교회는 건물도 시스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며, 십자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 공동체는 모임에서만이 아니라, 성도 개인의 삶에서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자율적인 신앙의 헌신과 반응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십분의 일로 완료형이 아닙니다. 삶 전체로 이야기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질로 드릴 수 있고, 재능으로 드릴 수 있고, 다양한 모양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헌신의 모양을 의무조항으로 만들고,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실 것을 기대하며, 오늘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오늘도 내가 십자가 신앙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의 삶 속에서 끈임없이 반복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